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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래를 만들었는데, 나라가 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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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6tZE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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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중반까지
동양에는 근대적 의미의 국가 (國歌), 즉 '나라를 대표하는 노래' 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이는 중국 대륙의 청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들어 청나라는 외부 세력과 접촉하게 되었다.
특히 1800년대 중후반에 걸쳐
유럽 국가들한테 앞뒤로 털렸고, 국제적인 석상에 나갈 일도 많아졌다.
(이홍장, 청일전쟁에서 개털린 이후
1896년에 서유럽 + 러시아에 이것저것 배우러 파견됨)
(시대랑 관계없는 그림입니다.)
니하오 잘 오셨습니다
암튼 본격적인 행사 시작에 앞서서 환영식을 좀 해야할 것 같네요.
혹시 청나라의 국가 악보 좀 줄 수 있겠습니까?
(시발 국가 같은거 없는데 어떡하지)
결국 이홍장 측은
당나라 시대에 쓰인 시인 왕건의 '궁사일백수' 를 가사로,
청나라 경극에서 쓰이던 '말리화' 를 곡조로 하여
급하게 국가 (라고 하고) 로 제출했다.
이런 일들이 있다보니,
청나라 정부에서는 점점 공식적인 국가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당시 조광권 (종교적 행사 및 의식을 관리하던 정부 부서) 에서
공식적인 국가를 만들 것을 조정에 건의하여,
이후 '아이신기오르 푸통 (愛新覺羅 溥侗)' 이 작곡을,
유럽의 서적 등을 번역하던 학자 '엄복 (嚴復)' 이 작사를 맡고,
예부에서 일하던 '곽증흔 (郭曾炘)' 의 편곡 과정을 거쳐
청나라의 국가, '공금구 (鞏金甌)' 가 1911년 10월 4일에 탄생하게 되었다.
공금구는 '견고한 금잔' 혹은 '금잔을 견고하게 하다' 라는 뜻이다.
혹은 여기서 '잔' 은 국가 (Nation) 를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했기에,
'국가를 부강하게 키우다' 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가사는 옛 한문투로 되어있다.)
아무튼 이제 국가도 만들었겠다, 기분 좋은 새시작을!
는 불과 6일 뒤인 1911년 10월 10일, 청나라 멸망의 시발점이 된
'우창 봉기' 가 터져버린다...
결국 청나라가 이듬해인 1912년 2월 12일 멸망하면서, <공금구> 는
공식적 국가로서는 131일 (1911.10.4~1912.2.12) 쓰이고 만 비운의 노래가 되었다.
다만 멸망 이후 청나라 소조정,
즉 자금성 내부에서는 1924년경까지 계속 불리긴 했다고는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DS7NmPorf4
끝으로 공금구의 연주 영상을 들으며 마무리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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