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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까먹으셨을 그 소설 5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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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교육을 시작한지 2주째, 제이의 신체 능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젠 오히려 세리가 제이의 뒤를 따라가는 경우가 늘었고,
흡혈귀 특유의 밤눈으로 세리나 그녀의 권속이 놓친 사냥감을 발견하는 일도 늘었다.
사냥을 마치고 저택으로 돌아온 제이는 간단히 목욕을 한 후,
어머니께 보고하기 위해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코너를 돈 순간 갑작스럽게 나타난 검은 무언가에 부딪혀 그대로 주저앉았다.
“미안하군”
한은 태연하게 말하며 제이를 들어서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커다란 덩치의 한을 보며
제이는 무엇인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제이를 일으켜 준 한은 별 다른 말 없이 제이를 지나쳐 복도를 지나갔고,
제이 역시 다시 발을 움직여 어머니의 방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렴”
어머니의 허가를 받고 제이가 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선 제이를 어머니는 손짓하며 가까이 오라고 하였고,
제이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어머니는 그런 제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택에서의 생활은 좀 익숙해졌니? 형, 누나들은 잘 대해주니?”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저택과 어머니께 도움이 되고 있는지, 능력의 각성도 아직 되지 않고”
여전히 흡혈귀로서의 신체능력은 역대급으로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제이였지만
흡혈귀라면 누구나 하나는 가지는 능력을 아직 각성시키지 못했다는 것에 있어서
제이는 다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런 제이의 고민을 이해한다는 듯 어머니는 다정히 제이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단다. 너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단다.
사라도 제이 네 덕에 저택에 식량이 풍부해져서
요리를 궁리하는기 힘들다며 기쁜 퉁명을 냈는걸?”
그런 어머니의 격려에 조금은 마음이 풀렸는지
제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을 느꼈다.
그러던 중 불현듯 방금 복도에서 부딪힌 거한, 한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어머니 그러고보니 한님은 왜 저택 밖에서 생활하시는 건가요?
사라누나랑 카이형도 한님은 존칭으로 대하고,
세라누나도 한님은 마주친 적이 별로 없다고 하더라구요.”
“아...한이 저택 밖에서 생활하는건 날 위해서란다.”
“어머니를 위해서요?”
한의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제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었고,
제이 역시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잡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사실을 말하자면, 한은 너희처럼 나의 대에서 생긴 권속이 아니란다.
나의 선대, 나의 아버지 대에서 권속이 되었고,
심지어 나보다 일찍 권속이 된, 이를 태면 내 오라비에 해당하지”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눈에는 얼핏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담겨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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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데! 어디있느냐! 아버님께서 찾으신다!”
긴 백발을 뒤로 질끈 묶은 미형의 남성,
한이 복도를 뛰어다니며 외치고 있었다.
달빛을 머금은 듯 하얀 백발과 창백해보이는 흰 피부,
그에 대비되는 검은 옷을 갖추어입은 한이 뛰어다니며 찾는 것은
얼마전 눈을 뜬 여동생 이솔데였다.
동방에서 자신을 권속화 하고 성으로 데려온 뒤
얼마 안 되어 새로이 권속으로 맞아들인 소녀 이솔데는
호기심이 왕성했고, 권속으로서 각성한 능력도 공간이었기에
이렇듯 한번 숨으면 찾는 것에 어려움을 겪곤 했다.
“...았느냐”
어둠 속에서 한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백발과 흰 피부를 가졌지만
비교할 수 없는 어둠을 품은 듯한 존재, 카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 6위 진조이자 권속으로서 한과 이솔데의 창조자,
탐구자라는 이명을 지닌 카인은
이전 동방에 방문했던 것이 즐거웠는지
“한복”이란 이름의 동방의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의 의복을 즐겨 입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그 아이가 한번 숨으면 찾는 것이 힘들어서.”
“괜찮다. 마을에서 본 남매가 노는 것 같아 즐겁구나 하지만 이솔데? 너무 오라비를 괴롭히면 안 된다”
카인은 웃으며 손을 한번 내젓자 어둠 속에서 한이 찾던 소녀 이솔데가 튀어나왔다.
백발을 길게 늘어트리고 붉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어둠속에서 튀어나온 기세 그대로 바닥을 굴렀고,
그렇게 널부러진 이솔데를 한은 한쪽 팔로 들어올려 세웠다..
“이솔데! 자유로운 것은 좋지만 정도를 지키라 하지 않았느냐! 교육시간에는 늦지 말라고!”
“하지만 한 오라버니의 수업은 너무 재미없는걸요! 전 성을 탐험하는게 더 재밌어요!”
붉은 눈을 빛내며 한에게 대항한 이솔데는
말이 끝나자말자 한의 팔을 탈출해 카인의 뒤에 가서 숨었다.
차마 아버지의 앞에서 크게 화를 낼 수 없었던 한은
화를 누르며 이솔데에게 말했다.
“그래도 교육시간을 그렇게 맘대로 빠지면 안 되지? 화 안 낼태니 이리 오거라”
“정말 화 안 낼꺼에요?”
“너는 귀여운 여동생인데 어떻게 화를 내겠니? 이리 오렴”
한의 부름에 이솔데는 카인을 한번 올려다보았고,
카인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카인의 뒤에서 나와 한에게 다가갔다.
“오라버니 죄송해요”
“괜찮다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 간단히 마치도록 하마. 아버지 그럼 저희는 이만”
한은 카인에게 인사를 하고서 이솔데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고
카인은 미소지으며 그런 둘을 바라보다가
이내 무표정으로 바꾸고는 창 밖의 달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미있구나. 인간이 아닌 것들이 인간의 행동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어.
아버지, 당신도 이런 기분이셨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카인의 눈동자에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다는 불만과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 차올랐지만
이내 그것을 외면하고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상들이 지나고 세기도 지치는 세월이 자나면서
세 사람의 성은 어느새 많은 권속들, 그리고 경비견 역할을 하는 구울들로 가득찼고,
그런 숲 속의 성의 소문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갔다.
“이 성인가? 흡혈귀의 소문이 나오고 있는 성은?”
성의 앞에는 검은 옷을 입고서 가면을 쓴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서있었다.
밤의 어둠 속에 섞여서 어둠의 백성을 사냥하는 자들,
사냥꾼인 두 사람은 흡혈귀의 소문을 쫓아
이 깊은 숲 속의 찾는 이 없는 성까지 찾아온 것이다.
“명심해. 오늘은 그저 탐색이야.
만일 소문이 맞다면, 여기에 있는건 진조급의 흡혈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판단될 경우 즉시 퇴각 후 본부에 지원을 요청한다.”
둘 중 더 연상으로 보이는 목소리의 남자가 말했고,
동료로 보이는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약통을 꺼냈다.
흡혈귀 사냥꾼을 위해 제공되는 이 약은
한알을 먹으면 복용자의 기척이 흡혈귀들에게 탐지당하기 어렵게 만들고
두알을 먹으면 기척을 감추는 것은 힘들어지지만 반대로 일시적으로 신체능력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강제적인 신체능력의 상승은 부하가 강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기척을 감추는 용도로 한 알만 복용하도록 하고 있다.
두 남자 역시 가면의 입 부분을 열어 약 한 알을 삼키고
수로를 통해 성 안으로 잠입했다.
성 안을 탐색하던 두 사람이 홀에 도착했을 때,
그 둘이 마주한 것은 거대한 홀을 가득 채운 구울과 흡혈귀의 무리,
왕좌에 걸쳐앉아 그들을 내려다보는 남자와 그를 양쪽에서 보좌하는 남녀였다.
아래쪽에 있는 흡혈귀들은 개개인으로 본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지만
격이 달라보이는 세 흡혈귀는 1대1로 상대하는 것은 자살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으며,
중앙 왕좌에 앉아있는 자는 그저 손만 휘져어도
한 부대는 충분히 쓸어버리고 남을 정도의 강함으로 보였다.
탐색꾼인 자신들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그들은
곧바로 퇴각 후 본부에 보고하며 토벌 지원을 요청했고
본부는 이내 정예 토벌부대를 편성해 보내주었다.
흡혈귀의 힘이 가장 약화되고 무방비해지는 정오의 시간,
사냥꾼들은 성을 둘러싼 숲을 가득 채우며 포위하고는
준비해둔 은장비의 점검을 마치고 진입준비를 마치고 진입명령을 기다렸다.
머지않아 명령이 떨어지고 포격으로 성문을 부수고 진입한 사냥꾼들은
축사를 마친 성유를 뿌리며 불을 질렀고, 잠들어있던 흡혈귀들은 무방비하게 학살당했다.
그렇게 승기를 잡는 듯 했으나 아무리 많은 부대가 모였다고 한들
성에 한번에 진입할 수 있는 병력은 한계가 있었고,
시간을 결단코 인간의 편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흡혈귀들은 성유에서 일어난 성화에 몸이 불살라지는 것도 개의치않아하며 달려들었고,
많은 사냥꾼들이 구울이 되어 동료의 손에 안식으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며 해가 저물때가 되자
흡혈귀는 더더욱 본연의 힘을 찾아갔고 반대로 사냥꾼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욱 지쳐갔다.
그럼에도 사냥꾼들은 인류의 수호라는 거룩한 사명을 붙잡고서
계속해서 싸워갔고 성을 가득 채웠던 흡혈귀와 구울들을 상당수 토벌했다.
구울들은 진작에 성유를 뒤집어 쓰고 성화에 불살라졌으며
흡혈귀도 남은 개체는 성 중앙에서 주인을 지키는 몇명 뿐이었다.
이내 성 중앙 홀에 도착한 사냥꾼 부대는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성의 주인, 카인을 마주했다.
“어서오거라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여기까지 온 그대들의 용기와 무모함에 경의를 표하지”
카인은 여전히 오만하게 왕좌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았고,
이솔데와 한은 카인의 양쪽에서 그저 무표정하게 그들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둘의 직속 부대인 흡혈귀들은 각각 왼쪽과 오른쪽 벽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고,
중앙에 난 길을 통해 사냥꾼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카인에게 다가갔다.
“나는 흡혈귀토벌부대 대장, 레너드다. 감히 묻도록 하지, 그대는 진조의 일각인가?”
흡혈귀토벌부대 대장 레너드는 경계를 하며 물었고,
그런 그를 카인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본좌는 탐구자 카인, 그대들이 지금까지 토벌했다고 하는 하위진조들과는 다른,
상위진조의 일각으로 부끄럽지만 제 6위 진조의 좌를 범하고 있다.”
“대답 고맙군, 그렇다면 그대의 친절에 기대어 하나 더 묻도록 하겠다.
인류와 정의의 이름 아래에 스스로 그 목숨을 곤히 바칠 생각은 있는가”
레너드의 당돌한 물음에 이솔데는 분노에 칼을 뽑으려 했지만
한의 만류에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카인은 여전히 웃음을 띈 채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본좌도 그대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어째서 이 숲속에서 조용히 살던 우리를 습격했지?
그것도 우리가 가장 무방비할 시간에? 이것이 그대들이 말하는 정의인가?”
“그대들은 세상의 법칙에 위배되는 존재,
생물에겐 삶과 죽음이 존재하며 이것은 무엇도 뒤집을 수 없다.
하지만 그대들은 죽음을 거부하고 세상의 법칙을 깨트리려 하니,
우리가 세계의 의지를 받들어 그대들에게 죽음을 안겨주는 것,
그러니 우리가 정의인 것이다.”
카인의 질문에 몇몇 사냥꾼들은 움찔한 것에 비해
레너드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
그런 레너드의 대답을 듣고 카인은 폭소를 터트리고는 대답했다.
“오만하군, 겨우 잠깐을 살다가는 인간이 세계의 법칙? 세계의 의지? 정의?
본좌의 지루함을 달래주기위한 여흥이었다면 칭찬해주도록 하마”
그렇게 말하며 카인은 가볍게 손을 옆으로 움직였고,
레너드의 뒤에 있던 수십에 달하는 부하들의 목이 일제히 날아갔다.
갑작스럽게 목이 사라지자 갈 곳을 잃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앗고,
그 피는 비처럼 내려 레너드를 적셨다.
“이게 그대의 대답인가”
그럼에도 레너드는 동요하지 않고 품 안에서 시계형태의 물건을 꺼냈다.
처음보는 물건에 카인은 호기심에 눈을 밝혔고,
그런 카인을 바라보며 레너드는 그것을 하늘로 높이 던져올리며 외쳤다.
“이것이 너희, 흡혈귀를 토벌하기위한 인류의 어금니다!”
그것은 하늘로 던져올려지더니 강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만들어낸 그것은
흡혈귀만을 태우는 태양빛의 힘을 한없이 가깝게 흉내낸
인공적인 태양, 일명 자비로운 태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한 빛에 휩싸였던 홀은 이내 찾아온 칠흑같은 밤을 맞이했다.
자비로운 태양은 카인이 불러낸 어둠에 먹혀버렸고,
미처 빛을 피하지 못한 흡혈귀만이 재로 변했을 뿐,
카인은 금방 회복될 정도로 그저 조금 약체화 된 것에 그쳤으며
한과 이솔데는 카인이 호기심에 몸을 앞으로 내민 덕에
빛이 가려져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신의 불길인 태양을 흉내내려 하다니, 과연 세계의 법칙을 모욕하는 것은 누구일까?”
카인은 불쾌하다는 듯 어둠 채로 자비로운 태양을 부숴버렸고,
마지막 수단까지 부정당한 레너드는 뒤늦은 절망에 무릎꿇었다.
“왜 그러지? 세계의 의지를 위해 정의를 실행한다고 하지 않았나?
자 그대의 적이 빈손으로 눈앞에 있다. 검을 들어보거라.”
카인은 어느새 레너드의 앞으로 내려왔고,
레너드의 가슴에 그 손을 꽂아 강제로 일으켜세웠다.
레너드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카인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이미 마음이 꺾여버린 몸부림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죽어버린 눈을 바라보던 카인은 흥미를 잃었다는 듯 손을 가볍게 휘둘렀고
그대로 심장이 뽑힌 레너드의 빈 몸뚱이는 바닥을 굴렀다.
움직일 몸을 잃은 신체의 동력원은 카인의 손에서 축 늘어졌고,
카인은 그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를, 그 안에 담긴 한때 강인한 전사의 영혼을 음미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변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카인이 레너드의 뽑혀진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를 흡수하자
그는 심장을 부여잡고 앞으로 쓰러져 고통을 호소했고,
끝까지 무표정으로 일관했던 이졸데와 한은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며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버님! 무슨 일입니까!”
“오라버니 아버지의 영혼의 어둠에 이물질이!”
이졸데의 말에 한은 혈기를 눈으로 집중했고,
칠흑으로 가득했던 아버지의 심장에 이물질인 빛 한 조각이 들어갔음을 눈치챘다.
“크윽, 인간놈들, 설마 자신들의 영혼에 장난질을 했을 줄이야.
신께서 허락하신 영혼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 빛은 미약했지만 마치 인간에겐 암세포처럼 카인의 영혼을 좀먹어갔고,
카인은 처음 느껴보는 영혼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널부러진 레너드의 시신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땅바닥에 무가치하게 던져진 레너드의 시신은
그대로 어둠 속으로 먹혔고 그 모습을 확인한 카인은 고통 속에서 해매며 이솔데를 찾았다.
“이솔데! 지금 당장 진조의 좌를 이어라!
그대는 나의 권속 중 가장 긴 권속화를 보낸 자,
이 힘을 있기에 가장 합당하도다!”
항상 냉정침착했던 카인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다급한 명령에
이솔데는 머뭇거렸고, 이를 지켜보던 한이 나섰다.
“뭐하는 것이냐! 이솔데! 아버님을 계승의 성소로 모시거라!”
한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카인의 왼쪽을 지탱해 일으켜세웠고,
이솔데도 한의 말을 따라 카인의 오른쪽을 지탱하며 계승식이 진행될 성소로 이동했다.
성소에 도착한 카인은 이미 영혼의 침식이 느리지만 눈에 띄게 진행되었고,
그 모습을 지켜본 한과 이솔데는 서둘러 의식의 준비를 마쳤다.
“그럼, 고대로부터 내려온 위대한 법률에 따라,
남아있는 아버님의 권속 중 가장 오래된 권속인
제가 이번 계승 의식의 제사장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한은 입을 일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 제사장의 옷으로 환복해 의식장 중앙에 섰고,
그를 중심으로 양옆에 놓여진 침상에 카인과 이솔데가 그 몸을 뉘었다.
“위대하신 밤의 주인의 영혼이여,
지금 그대의 종 카인이 밤의 여정의 끝을 마지하고
그 발걸음을 종의 여식 이솔데가 잇고자 합니다.
당신의 영혼의 파편으로 그 발걸음에 함께 하소서!”
한은 약식이지만 제사의 조문을 외우며
의식의 단검을 각각 이솔데와 카인의 심장에 꽂아넣었다.
카인의 심장으로부터 핏빛의 촉수같은 것이 나오더니
한의 팔을 타고 그의 가슴깨를 지나 이솔데의 심장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계승식, 말 그대로 진조의 자리를 계승하기 위한 의식으로
진조의 영혼의 그릇, 그 심장에 담긴 시조의 영혼조각을 가장 진조에 가까운 권속,
권속화가 가장 오래 진행되었던 권속에게 넘기는 것이 관례이다.
이 계승이 진행되는 동안 둘은 완전히 무방비가 되기에,
의식의 진행은 진조가 가장 신뢰하는 권속, 가장 그를 오래 섬긴 권속이 제사장을 맡아 진행했으며
시조의 영혼은 진조에게 박힌 의식의 단검을 통해 빠져나와 제사장의 몸을 통과하고
권속에게 박힌 단검을 통해 그 심장에 자리를 잡는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권속은 시조의 영혼과 합일하여 진조의 자리를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제사장을 맡은 권속은 그 과정에서 제사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되어 목숨을 잃지만
혹은 살아남을 경우 새로 진조가 된 자와 계약을 통해 권속의 상위존재 [기사]로서
진조의 모든 능력을 진조에 비해서는 조금 약화된 상태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영원같은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시조의 영혼은 모두 이솔데의 심장에 깃들었고,
카인은 기나긴 밤의 여정을 마쳤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영혼을 좀 먹는 빛은 계속해서 퍼져갔고,
결국 빈 껍데기가 된 그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한은 지친 몸으로 아직 정신이 들지 않은 이솔데를 들어안고
서둘러 성을 떠났고, 그들이 밖으로 나오고 얼마되지않아
성은 새하얀 불꽃에 휩싸였다.
한은 가족들과 함께 살던 성과 그 성을 감싸는 새하얀 불꽃을 증오스럽게 바라보았고,
그러길 잠시 후 그의 품에서 이솔데가 눈을 떳다.
성을 빠져나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이솔데는 시조의 영향인지 눈에 띄게 성장했다.
소녀로 보이던 신체는 성인의 그것으로 바뀌었고,
그 머리의 달빛에도 얼핏 붉은 기가 섞였으며,
의식의 단검은 시조의 영혼과 함께 신체에 녹아 혈석이 되어
가슴골 사이에서 붉은 빛을 반짝였다.
의식에서 살아남은 한 역시 자신의 신체가 이전에 비해 강해졌음을 느꼈고,
이솔데에 대한 강한 강제력을 느꼈다.
“오라버니 우선 이동하죠. 여기서 남쪽으로 석달 정도의 밤을 이동하면
오래전에 아버님이 이 성으로 오기 전에 사용하시던 저택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이동한 후에 진조회에 보고를 비롯한 일을 진행합시다.”
이솔데는 말을 마친 후 숲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고,
한은 그런 여동생을 쓸쓸히 바라보다가 말 없이 어둠 속에 녹아들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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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나의 아버지, 선대 6위 진조 카인과 나의 오라버니였던 한의 일이란다.
다른 아이들은 한에 대해 물어보지 않아서 말할 일이 없었지만,
제이 너를 보다보면 그 시절의 나와 한을 떠올리게 되는구나.”
그렇게 말을 마친 이솔데는 조용히 제이를 끌어안았고,
그 포옹은 지금까지 이솔데가 했던 무언가 비어있는 포옹이 아닌
쓸쓸함을 채우려는 듯 몸을 조금 떨었고, 제이는 처음으로 보는 어머니의 약한 모습에 당황하며
그저 어머니를 마주 안았다.
잠시 후 진정된 이솔데는 제이에게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고 말하며 침소에 들었고,
어머니의 이불을 덮어드린 후 제이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서 방을 나섰다.
그리고 방을 나선 제이의 앞의 벽에는 종이 하나가 단검에 박혀있었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 이해한 제이는 종이를 챙겼고,
그곳에는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내일 해가 완전히 지고난 후
남쪽 숲 외각 안개 지역으로
단검을 가지고 오거라
- 한 -'
제이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이 짧은 글에
지금까지 형 누나들에겐 느껴지지 않았던,
마치 격이 다른 생물로부터 느껴지는 듯한 공포감과 경외감을 느끼며
편지를 챙겨 방으로 이동했다.
+개인적으로 권속 캐릭터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애가 한인데 잘 써낼 수 있으려나...
+한복은 한국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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